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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프랑켄슈타인' 줄거리/등장인물/전체 리뷰/쿠키 (스포일러 없음)

by Every.any.something 2025. 11. 10.

안녕하세요. 오늘은 2025년 11월 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를 충격과 감동으로 물들인 걸작,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을 깊이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고전 '프랑켄슈타인'이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를 통해 '가장 완벽한 괴물들의 시인'이라는 칭호를 얻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손에서 어떻게 재탄생했을까요?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나 스릴러가 아닌, 창조와 피조물, 오만과 고독, 그리고 '누가 진짜 괴물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고딕 드라마입니다. 스포일러 없이, 이 거대한 비극의 줄거리, 심장을 울리는 배우들의 연기, 작품에 담긴 의미와 쿠키 영상 유무까지 자세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넷플릭스 '프랑켄슈타인' 포스터]

1️⃣ 줄거리 : 가장 위대한 창조, 가장 끔찍한 비극의 시작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서사는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이 가진 비극의 뼈대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시각적, 감성적 디테일로 살을 덧붙였습니다. 이야기는 스위스 제네바의 명망 높은 가문 출신인 천재 과학도,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광기 어린 집념에서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겪은 모종의 상실(아마도 어머니의 죽음)로 인해 '죽음'이라는 영역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된 빅터는 생명의 근원을 파헤치고, 마침내 죽음을 정복하여 스스로 '창조주'의 자리에 오르려는 금단의 연구에 몰두합니다. 그는 묘지에서 파헤친 시신의 조각들을 꿰매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가 생명을 불어넣은 존재는 그가 꿈꾸던 완벽한 '새로운 인류'가 아니라 끔찍한 외형을 지닌 '괴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창조물이 지닌 흉측함에 경악한 빅터는 극심한 공포와 혐오감에 사로잡혀, 갓 태어난 피조물을 그대로 버려둔 채 도망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두 개의 축으로 나뉘어 전개됩니다. 하나는 자신의 끔찍한 비밀로부터 도망쳐 일상으로 복귀하려 하지만, 죄책감과 창조물에 대한 공포로 서서히 파멸해 가는 '창조주' 빅터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갓 태어난 아이와 같은 순수한 영혼을 가졌으나 흉측한 외모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괴물'이라 불리며 버림받고, 인간들의 잔혹함 속에서 증오와 복수심을 학습하게 되는 '피조물'의 슬픈 여정입니다. 델 토로 감독은 이 '괴물'의 시선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말을 배우고, 감정을 느끼고, 그리고 인간의 '악의'에 노출되어 변해가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영화는 결국 자신을 버린 창조주를 찾아 나선 괴물과, 자신의 오만함이 불러온 비극을 마주해야 하는 빅터의 피할 수 없는 재회를 향해 달려갑니다.

2️⃣ 주요 등장인물 및 배우: 비극을 완성하는 완벽한 연기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이 단순한 고전의 재해석을 넘어선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캐릭터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배우들의 공로가 절대적입니다.

  • 빅터 프랑켄슈타인 (오스카 아이작)
    :
    오스카 아이작은 신의 영역을 침범한 천재 과학자 '빅터'를 연기합니다. 그가 연기하는 빅터는 단순히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평면적인 단어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는 생명 창조에 대한 순수한(그러나 오만한) 열망,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즉각적인 혐오와 부성애의 완전한 부재, 그리고 그로 인한 파멸적인 죄책감 사이를 광적으로 오갑니다. 오스카 아이작은 지식인의 오만함과 그 이면에 숨겨진 연약함, 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감당하지 못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스크린에 구현해 냈습니다. 그는 분명 이 비극의 '원인 제공자'이자 '첫 번째 괴물'입니다.
  • 괴물, 크리처 (제이콥 엘로디)
    :
    이 영화의 진정한 심장이자 가장 슬픈 존재인 '괴물(크리처)'은 제이콥 엘로디가 맡았습니다. 훤칠한 키와 조각 같은 외모로 유명했던 그는, 상상조차 힘든 특수 분장 속에 자신의 본모습을 완전히 감추고 오직 육체와 눈빛, 그리고 서툰 언어만으로 '괴물'의 영혼을 연기합니다. 델 토로 감독의 '괴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악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백지상태의 순수한 영혼이었지만, 자신을 창조한 아버지(빅터)에게 버림받고, 마주치는 모든 인간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며 '인간의 잔혹함'을 배웁니다. 제이콥 엘로디는 배움의 기쁨, 소통의 열망, 그리고 이어지는 거절과 배신 속에서 절망하고 분노하는 '괴물'의 심리 변화를 처절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 엘리자베스 / 클레어 (미아 고스)
    :
    '고딕 호러 퀸' 미아 고스는 빅터의 약혼자인 '엘리자베스'와 또 다른 인물인 '클레어'라는 1인 2역을 맡아 극에 신비로움과 긴장감을 더합니다. 엘리자베스는 빅터의 어두운 내면과 대비되는 순수함과 빛을 상징하며, 빅터가 지켜야 할 마지막 인간성의 보루와도 같은 인물입니다. 미아 고스는 특유의 불안정하면서도 강단 있는 눈빛으로, 빅터의 광기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 애쓰는 엘리자베스의 복잡한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냅니다. 그녀가 1인 2역을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합니다.
  • 하인리히 (크리스토프 발츠)
    :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크리스토프 발츠는 빅터의 연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하인리히' 교수로 등장합니다. 그는 빅터의 재능을 알아보지만, 동시에 그의 위험한 야망을 경계하는 복합적인 인물입니다. 특유의 지적이면서도 서늘한 카리스마로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빅터의 광기를 부추기는 동시에 경고하는 야누스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3️⃣ 전체 리뷰 및 감상평 : 가장 슬픈 괴물에게 바치는 델 토로의 위로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공포 영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심장이 찢어질 듯 슬픈 '고딕 비극'이자, '다름'을 포용하지 못하는 인간 사회의 잔혹성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장입니다. 감독은 원작 소설의 핵심 질문인 '누가 진정한 괴물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번 관객의 심장 한복판에 던집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흉측한 외피를 기워 입고 태어난 '피조물'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창조주' 빅터와 단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거부하고 폭력을 가한 '인간 사회'야말로 진정한 괴물이라고 말입니다.

 

델 토로 감독은 자신의 페르소나와도 같은 '괴물'에게 깊은 연민과 공감의 시선을 보냅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소외된 존재들의 사랑을 그렸던 것처럼, 그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닌,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었던 하나의 '영혼'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영화의 모든 프레임은 델 토로 감독의 미학적 집대성이 담긴 '움직이는 예술작품' 그 자체입니다. 어둡고 축축한 실험실의 공기, 스위스의 장엄하지만 쓸쓸한 설산의 풍경, 그리고 무엇보다 '괴물'의 디자인은 압권입니다. 델 토로의 괴물은 혐오스럽지만 동시에 슬픈 눈을 가졌고, 그 불완전한 육체는 그가 겪은 고통의 지도로 기능합니다. 이는 CG가 아닌 정교한 특수 분장과 아날로그적 효과로 구현되어, 관객에게 더욱 직관적인 감정적 울림을 전달합니다.

 

또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이기적인 창조주'로만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역시 자신의 오만함과 죄책감에 갇혀 파멸해 가는 또 다른 '괴물'로 그렸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버림받은 두 괴물(창조주와 피조물)이 벌이는 처절한 파멸의 연대기입니다. 원작의 철학적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델 토로 특유의 어둡고 아름다운 동화적 감수성을 완벽하게 녹여낸, 2025년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4️⃣ 쿠키 영상 유무(없음) : 비극의 완성을 위한 마침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은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에도 어떠한 쿠키 영상(포스트 크레딧 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장엄한 엔딩의 여운을 느끼신 후, 크레딧이 시작되면 편안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셔도 좋습니다.

이는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선택입니다.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특히 '판의 미로'나 '셰이프 오브 워터'와 같은 작품들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우화'이자 '시'입니다. '프랑켄슈타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다음 편을 예고하거나 프랜차이즈를 위한 '복선'을 던지는 종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원작 소설 자체가 창조주와 피조물의 지독한 얽힘과 그로 인한 파멸이라는 완벽한 비극적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델 토로 감독은 이 비극을 온전히 존중하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시켰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은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깊고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 여운이야말로 감독이 의도한 진정한 '쿠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쿠키 영상이라는 짧은 보너스 장면으로 이 거대한 비극이 남긴 감정의 파고를 흐트러뜨리는 것은,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해치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감독은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거나 넷플릭스 시청을 마친 후, 화려한 보너스 씬이 아닌,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안고 돌아가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따라서 '프랑켄슈타인'에 쿠키 영상이 없다는 것은 아쉬운 소식이 아니라, 이 작품이 하나의 완벽한 예술작품으로서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음을 의미하는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흐르는 장엄하고 슬픈 음악을 들으며, 이 위대한 비극이 남긴 감정들을 곱씹는 시간을 갖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