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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창고에 묻힐 뻔했던 한 편의 걸작을 마침내 만났습니다. 배우 이병헌과 배우 유아인이 출연하는 영화입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두 배우가 대한민국 바둑의 두 전설, '조훈현'과 '이창호'로 만난 영화 '승부'입니다. 주연 배우의 논란으로 인해 2년 넘게 표류했던 이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2025년 3월 극장 개봉 후 5월 넷플릭스에 공개되며 그 압도적인 작품성으로 모든 논란을 정면 돌파했습니다.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두 천재의 숨 막히는 대국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부터 그들의 처절했던 '승부'의 줄거리, 신들린 연기, 냉철한 총평, 그리고 깊은 여운을 남긴 결말(쿠키)까지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줄거리 : 스승이 제자를 들였고, 제자가 스승을 넘어섰다
'승부'의 이야기는 1980년대, 대한민국 바둑계를 완벽하게 평정한 '황제' 조훈현(이병헌)의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이미 모든 타이틀을 석권한 압도적인 일인자이자, 바둑계의 '슈퍼스타'입니다. 1984년, 그는 전주에서 올라온 9살의 내성적인 소년, '이창호'(아역 김강훈)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를 자신의 집에서 숙식하는 '내제자(內弟子)'로 받아들입니다. 이는 사실상 아들을 한 명 더 들인 것과 같은 파격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영화는 한 지붕 아래에서 시작된 두 천재의 기묘한 동거를 밀도 있게 그립니다. 조훈현의 아내(문정희)는 어린 이창호를 친아들처럼 보살피고, 조훈현은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제자에게 쏟아붓습니다. "바둑은 기세다"를 외치는 스승의 화려하고 공격적인 바둑과 달리, '석불(石佛)' 이창호(유아인)는 묵묵히 스승의 가르침을 흡수하며 자신만의 '느리고 단단한' 바둑을 완성해 나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16세의 이창호는 스승의 아성에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핵심 갈등은 1989년 '제1회 응씨배' 결승에서 조훈현이 기적 같은 우승으로 '바둑 황제'의 정점에 오른 직후, 가장 사랑하는 제자 이창호가 자신의 타이틀을 하나씩 빼앗아가는 과정에서 폭발합니다. 조훈현은 스승으로서 제자의 성장에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평생 일인자였던 승부사로서의 자존심과 인간적인 질투심에 휩싸입니다. 이창호 역시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를 꺾어야만 하는 잔인한 운명 앞에서 고뇌합니다. '승부'는 이처럼 한 지붕 아래 살던 두 사람이 결국 바둑판이라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서로의 심장을 겨누는 라이벌이 되어가는 과정을 실제 두 사람의 역사적인 대국들을 배경으로 처절하고도 뜨겁게 그려냅니다.
2. 등장인물 및 배우 : 이병헌의 '불'과 유아인의 '얼음', 그 완벽한 조화
이 영화는 '연기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두 배우의 마스터클래스입니다.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호평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두 배우가 보여준 신들린 연기력 때문입니다.
- 조훈현 (배우 이병헌)
: '황제' 조훈현 그 자체였습니다. 이병헌은 특유의 정확한 발성과 폭발적인 에너지로 승부에 모든 것을 거는 화려한 승부사 '조훈현'을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그는 1인자의 여유와 자존심, 그리고 제자를 향한 아버지 같은 따뜻함, 동시에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제자를 향한 복잡한 질투심까지 한 인물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의 스펙트럼을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펼쳐 보입니다. 특히 제자에게 패배한 후 홀로 복기하며 분노와 슬픔을 삭이는 장면은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명장면입니다. - 이창호 (배우 유아인)
: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이자, 동시에 나오지 못할 뻔했던 이유입니다. 유아인은 '이창호 9단'이라는 한국 바둑사에서 가장 신비로운 천재를 연기했습니다. 그는 영화 내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석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든 에너지를 '불'처럼 터뜨리는 이병헌과 정반대로 유아인은 모든 것을 안으로 삼키는 '얼음' 같은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는 대사 대신 미세한 눈빛의 떨림,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바둑돌을 놓는 손짓 하나로 스승을 넘어서야 하는 제자의 고뇌와 천재의 고독을 완벽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이병헌의 '동(動)'과 유아인의 '정(靜)'이 바둑판 위에서 충돌하는 모든 순간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 조력자들 (배우 문정희, 김강훈)
: '문정희'는 두 천재 사이에서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조훈현의 아내 '정미화' 역을 맡아 극의 균형을 잡았으며, 어린 이창호를 연기한 '김강훈' 역시 이병헌과의 '사제 케미'를 훌륭하게 소화하며 극 초반의 서사를 단단하게 구축했습니다.
3. 총평 : '바둑'을 몰라도 빠져드는 두 천재의 뜨거운 심리 전쟁
'승부'는 2025년 가장 '뜨거운' 영화였습니다. '바둑'이라는 영화적으로 구현하기 가장 정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토록 심장이 멎을 듯한 '심리 스릴러'를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성공작입니다. '퀸스 갬빗'이 체스를 통해 한 천재의 성장을 그렸다면 '승부'는 바둑을 통해 스승과 제자라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잔인한 관계의 본질을 파고듭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과는 '바둑'의 룰을 몰라도 두 인물의 '감정'만 따라가면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점입니다.
바둑판은 두 사람의 '전장'이자 '대화창'입니다. 바둑돌 하나하나에 실린 스승의 분노, 제자의 존경, 그리고 서로를 향한 애증이 스크린을 가득 채웁니다. 물론, 영화가 두 사람의 실제 역사적인 대국들을 압축해서 보여주다 보니, 바둑 팬들 입장에서는 다소 생략되거나 극화된 부분이 아쉬울 수 있습니다.
또한, 주연 배우의 논란으로 인해 이 위대한 연기를 온전히 감상하기 어렵다는 '외적인' 한계는 이 영화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주홍글씨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배제하고, '영화' 그 자체만으로 평가한다면 '승부'는 두 거목 같은 배우가 서로의 연기를 불꽃처럼 주고받으며 완성해낸 2020년대 한국 영화계의 가장 강렬한 '2인극(二人劇)' 중 하나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병헌과 유아인의 연기 '승부'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4. 쿠키 (없음) : '쿠키'는 없다, '여운'이 있을 뿐
'승부'는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에 등장하는 마블식 별도의 '쿠키 영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 그 자체로 두 사람의 관계를 완벽하게 정의하며 관객들에게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결말 쿠키'를 선사합니다.
- 결말 해석
: 모든 타이틀을 제자에게 내주며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온 '조훈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스승을 넘어 명실상부한 '세계 일인자'가 된 '이창호'입니다. 시간은 흘러 두 사람은 더 이상 스승과 제자도, 치열한 라이벌도 아닌, 바둑이라는 길을 함께 걷는 '도반(道伴)'이 되었습니다. - 마지막 장면 (두 사람의 대화)
: 영화의 마지막은 노년(혹은 중년)이 된 두 사람이 조용한 기원에서 다시 한번 바둑판을 마주하는 모습으로 끝납니다. 승패가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두 사람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저 '바둑' 그 자체를 즐깁니다. 조훈현은 여전히 쾌활하고, 이창호는 마침내 '석불'의 표정을 풀고 편안한 미소를 짓습니다. - 결말의 의미
: 이 장면은 '승부'는 끝났지만 '바둑(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치열하게 서로를 물어뜯던 스승과 제자는 세월이 흘러 마침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존경하는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습니다. 이창호가 스승에게 배운 것은 '바둑 기술'뿐만이 아니라 '승부사의 자세'였고, 조훈현이 제자에게 배운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법'과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기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덤덤하고 따뜻한 마지막 장면이야말로 '승부'라는 치열한 제목 뒤에 숨겨진 진짜 주제, 즉 '계승'과 '존경'을 완성하는 가장 완벽한 '엔딩 쿠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