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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한국 영화의 저력을 보여주며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던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를 다시 한번 깊이 있게 파헤쳐 보려 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1991년 아프리카의 지옥도 한복판에 고립되었던 남북한 대사관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기를 그린 이 작품은, 단순한 액션 영화를 넘어 우리에게 '이념'과 '인간'이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부터 이념의 경계가 무너졌던 그날의 줄거리, 스크린을 압도한 배우들의 앙상블, 냉철한 총평, 그리고 한국 영화사상 가장 완벽한 엔딩으로 기억될 '쿠키' 해석까지 꼼꼼하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1. 줄거리 : 1991년 소말리아, 이념의 전쟁터가 생존의 전쟁터로
'모가디슈'의 배경은 1991년,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입니다. 당시 대한민국(SK)은 UN 가입을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지표가 절실했고, 이미 아프리카의 오랜 우방이었던 북한(NK)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대한민국 대사 '한신성'(김윤석)과 안기부 출신 참사관 '강대진'(조인성)이 소말리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북한 대사 '림용수'(허준호)와 참사관 '태준기'(구교환)의 교묘한 방해 공작과 현지 강도들의 습격으로 인해 시작부터 위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한민족끼리 등 처먹는다"며 으르렁대던 남북의 갈등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 이유는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반군의 봉기로 인해 소말리아 내전이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은 정부군과 반군 모두에게 그저 식량과 무기, 차량을 빼앗기 위한 표적이 됩니다.
통신은 두절되고, 공항은 폐쇄되며, 모든 외교관은 완벽하게 도시에 고립됩니다. 정부군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반군의 무차별 총격에 노출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한신성' 대사와 직원들은 목숨을 걸고 대사관을 탈출해 유일하게 연락이 닿았던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마지막 선택지로, 조금 전까지 적으로 대치했던 '북한 대사관'의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밥 좀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처절한 한마디를 들은 '림용수' 대사는 고뇌 끝에 이념적 적대 관계인 그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한 지붕 아래, 어색하고 살벌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식량도, 물도, 무기도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남과 북의 사람들은 생존이라는 단 하나의 공동 목표를 위해 점차 경계를 허물고 힘을 합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유일한 탈출구인 이탈리아 대사관행 '구출기'에 탑승하기 위해, 책과 모래주머니로 방탄 차량을 만들어 지옥도 같은 모가디슈 시내를 질주하는 목숨 건 탈출 작전이 시작됩니다.
2. 등장인물 및 배우
'모가디슈'의 가장 강력한 힘은 단연코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입니다. 류승완 감독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이념의 대립과 인간 본성의 공존이라는 복잡한 심리를 완벽하게 스크린에 구현해냈습니다.
- 한신성 대사 (배우 김윤석)
: 대한민국 대사관을 이끄는 리더입니다. 배우 김윤석은 특유의 묵직한 카리스마와 현실감 넘치는 생활 연기를 오가며 극의 중심을 잡습니다. 그는 초인적인 영웅이 아니기에 위기 상황에서 고뇌하고 두려워하지만, 끝까지 자기 사람들을 책임지려는 '평범한 가장'이자 '외교관'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냈습니다. 특히 북한 대사관의 문을 두드릴 때의 절박함, 그리고 마지막 공항에서의 먹먹한 눈빛은 '한신성'이라는 캐릭터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 강대진 참사관 (배우 조인성)
: 안기부 출신의 엘리트 참사관입니다. 조인성은 특유의 스타일리시함과 날카로운 이미지를 '강대진' 캐릭터에 녹여냈습니다. 그는 이념적 잣대가 가장 투철한 인물로, 북한에 대한 강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극 초반의 긴장감을 주도합니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 속에서 점차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특히 후반부 카체이싱 액션을 이끄는 '행동대장'으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관객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 림용수 대사 (배우 허준호)
: 북한 대사관의 수장입니다. 배우 허준호는 그가 가진 독보적인 아우라와 중저음의 목소리로 '림용수'라는 캐릭터에 엄청난 존재감을 부여했습니다. 주체사상에 투철한 원칙주의자이지만, 자신을 따르는 동료들과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적'인 남한 사람들을 받아들일지 고뇌하는 그의 모습은 '한신성'과는 또 다른 리더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김윤석과의 팽팽한 연기 대결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 태준기 참사관 (배우 구교환)
: 북한의 안기부(보위부) 요원이자 '림용수'의 오른팔입니다. 구교환은 이 영화를 통해 '충무로 대세'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그는 '강대진'의 북한 버전 카운터파트너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남한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과 의심(쌀밥에 독을 탔을까 봐 망설이는 장면)을 품고 있지만, 결국 생존을 위해 협력하고 마지막 순간 눈물을 보이는 그의 모습은 이념이 빚어낸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그 외의 역할들
: '공수철' 서기관 역의 정만식, 한 대사의 아내 '김명희' 역의 김소진, 북한 대사의 아내 역의 박명신, 통역관 '박지은' 역의 박경혜 등 모든 조연이 각자의 위치에서 빈틈없는 연기력으로 영화의 밀도를 채우며, '모가디슈'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완벽하게 완성시켰습니다.
3. 총평 : 류승완 감독의 역작, '신파' 없이 빚어낸 가장 뜨거운 휴머니즘
'모가디슈'는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 '베테랑' 등을 통해 쌓아 올린 모든 역량을 집대성한 그의 필모그래피 최고작 중 하나라고 감히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위대한 성과는 '신파'를 완벽하게 배제했다는 점입니다. '남북한의 공조'라는 소재는 자칫하면 감정을 과잉 강요하는 '억지 감동'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둡니다. 그들은 "우리는 한민족"이라며 눈물로 얼싸안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서로를 경계하고, 밥 한 끼를 나누면서도 정치적 계산을 깔고 있으며, 오직 '살아야 한다'는 동물적인 본능 하나로 위태로운 동맹을 이어갈 뿐입니다. 이처럼 감정을 억누르고 건조하게 쌓아 올린 서사는 역설적이게도 후반부의 카체이싱 시퀀스와 마지막 공항 장면에서 그 어떤 신파보다 강력한 감정적 폭발력을 이끌어냅니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카체이싱' 장면은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액션 장면으로 기록될 만합니다. 할리우드의 화려한 CG가 아니라 실제 차량이 전복되고 총알이 빗발치는 아날로그 액션의 극한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살고 싶다'는 인물들의 처절한 절규가 스크린 밖으로 터져 나오는 듯한 압도적인 체험을 선사합니다. 100% 모로코 현지 로케이션으로 담아낸 1991년 모가디슈의 풍경, 피부로 느껴지는 사막의 열기와 먼지, 귓전을 때리는 총성은 관객들을 그야말로 전쟁터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이념의 대립이 얼마나 허망한지, 그리고 그 이념의 틈바구니에서도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모가디슈'는 그 어떤 교과서보다도 강렬하게, 그리고 세련되게 증명해 냈습니다.
4. 쿠키 (없음) : 침묵으로 완성된, 한국 영화사상 가장 완벽한 엔딩
먼저 명확히 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모가디슈'는 마블 영화처럼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에 등장하는 별도의 '쿠키 영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쿠키 영상'은 필요 없을 정도로 영화의 마지막 10분, 즉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서의 '침묵의 이별' 장면이야말로, 그 어떤 쿠키 영상보다 더 길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한국 영화사상 가장 완벽한 '엔딩 쿠키' 그 자체입니다.
- 결말(쿠키) 분석
: 지옥 같은 모가디슈를 탈출해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한 남북한 외교관들은 이탈리아 대사의 도움으로 'SK'와 'NK'로 나뉘어 각각의 비행기를 타게 됩니다. '모가디슈'라는 전쟁터에서 '한 팀'으로 생존했던 그들은, '안전지대'인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다시 '남'과 '북'이라는 이념의 벽 앞에 서게 됩니다. - '책'과 '신문'의 의미
: 이 장면에서 가장 가슴을 치는 메타포가 등장합니다. 탈출 차량 안에서 총알을 막기 위해 '방탄조끼'처럼 덧대었던 '책'과 잡지들. '지식'과 '문화'를 상징하는 그것들로 목숨을 구했던 그들은, 공항에서 서로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신문'과 '책'을 들어 올립니다. 이는 혹시나 함께 있는 모습이 외부에 노출되어 서로에게 정치적 피해를 줄까 봐 배려하는 행동인 동시에, '이념'과 '사상'(책과 신문으로 상징되는)이 결국 그들의 인간적인 교류와 작별 인사마저 가로막고 있음을 보여주는 처절한 상징입니다. - 침묵의 이별
: 그들은 서로에게 "고마웠다", "잘 가라"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합니다. 그저 책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로 다른 게이트를 향해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 '한신성'과 '림용수'가 인파 속에서 마지막으로 눈빛을 교환하지만,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습니다. 이 '침묵'은 "우리는 하나"라는 식의 값싼 위로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분단의 비극을 관객의 심장에 각인시킵니다. - 쿠키가 없는 이유
: 만약 이 장면 뒤에 '그 후 그들은 행복했다'라거나 '한신성이 훈장을 받았다'는 식의 쿠키가 붙었다면, 영화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모가디슈'의 엔딩은 그 '씁쓸한 침묵'과 '단절' 그 자체로 완벽하게 '닫힌 결말(Closed Ending)'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현실을 만들고, 그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 류승완 감독이 관객에게 남긴 가장 강력한 '쿠키'입니다.